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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처럼 알아보니

그랜저 - '2020 성공에 관하여'

그랜저TG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그랜저 뉴 럭셔리'의 2009년 TV광고에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삑!'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는 대사는, 당시 '돈=성공 이냐'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동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기도 하는 등 광고의 효과 자체는 굉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19년에 등장한 그랜저IG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더 뉴 그랜저'에서 다시 들고나온 성공에 대한 새로운 영상들은, 새롭게 출시한 모델 이상으로 세련되게 '요즈음'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인식을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동창회' 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돈 주고 사서 타는 수입차보다도 더 부러운 회사에서 받은 그랜저'인데, 10년 이상 수입차 업계에서 일하면서 쭉 보아온 어지간한 수입차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정확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크게 공감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랜저를 그다지 좋아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랜저IG의 경우는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택시로 뒷좌석에 타보고는 예상을 뛰어넘은 우수한 승차감에 너무 놀란 나머지 몇 날 며칠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중앙 모니터 옆 시계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과 배치이긴 합니다.)

대체 왜 누구를 위하여 거기에?

 

이번 그랜저는 출시 3년만의 페이스리프트이면서도 풀체인지와도 같은 수준의 실내/외 디자인 변화를 통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네시스 GV80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이 분명한 실내 컬러 구성들은 사진들만 보고있어도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입니다.

 

외관은 크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릴 안으로 들어간 '히든타입 DRL'은 '아 이런 시도도 신선하다' 정도의 느낌을 주었고, 리어도 '최신 유행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최신 해외 고급차들이 더욱 공을 들이고 있는 디자인 요소가 바로 라이팅 디자인이라는 점, 그리고 이번 그랜저도 그와 마찬가지로 앞뒤 모두 라이트를 멀리서 바라보거나 가까이서 들여다볼 때 모두 디테일이 굉장히 아름다워졌다는 점이 그런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저는 전문 자동차 리뷰어가 아니므로 감상은 간단히 마치고, 구매자 입장에서 과연 살 만한지 그리고 어떤 트림/옵션을 선택하면 좋을지를 정리해봅니다. 2020년 3월 현재 코로나19 영향으로 작년말로 끝났던 개별소비세 1.5% 적용이 부활했습니다. 그 기준으로 가격도 살펴봅니다.

 

먼저, 그랜저는 세 가지 파워트레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솔린 2.5 및 3.3, 그리고 하이브리드(2.4) 입니다. 가장 비싼 차는 셋 중 무엇일까요? 바로 하이브리드 입니다. 배기량은 가장 낮지만, 하이브리드 구동계 및 배터리가 추가되어야 하고, 셋 중 유일한 저공해2종 자동차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혜택 또한 가격으로 환산되어 들어가있을 것입니다. 저공해 혜택 및 하이브리드의 장점을 많이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차를 타신다면 하이브리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으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정도 차액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 기본 트림인 프리미엄 등급을 기준으로 간략하게 기본 가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솔린 2.5 가솔린 3.3 하이브리드
프리미엄 (개소세 1.5%) 3,212만원 +290만원 (2.5대비) +434만원 (2.5대비)

우리나라 승용차 연평균 주행거리는 13,000km대 이지만, 계산하기 쉽게 연간 15,000km로 가정시, 18인치 휠을 장착한 가솔린 2.5의 복합연비 11.6km/L를 적용하면 연간 1,293L의 휘발유가 필요하고, 70리터 연료탱크를 18.5회 가득 채워야 합니다. 동일한 주행거리에서 18인치 휠을 장착한 하이브리드의 복합연비 15.2km/L를 적용하면 연간 987L의 휘발유가 필요하고, 65리터 연료탱크를 15.2회 가득 채워야 합니다.

 

연간 연료소모량이 306리터 차이나는데, 오늘자 기준 오피넷 휘발유가격 1510원 적용시 연간 절약할 수 있는 '기름값'이 50만원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저공해2종 혜택도, 매일 서울 남산 통행료를 할인받거나 공영주차장에 월주차를 하면서 주차요금을 할인받지 않는 이상 딱히 써먹을데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공해3종 차량 8년째 운행 중) 그렇다면 저는 하이브리드는 굳이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다둥이카드도 있으므로, 저희 애들 클 때까지는 제가 무슨차를 보유하든 공영주차장은 어차피 할인입니다.

 

또한 저는 공차중량 1,500kg 내외의 전륜구동 승용차에는 200마력 언저리 출력이면 일상적인 시내/간선/고속 주행에 매우 적당하다는 것을 수많은 차량 시승을 통해서 이미 알고있기 때문에, 290마력을 내지만 290만원이 비싸고 자동차세도 높고 연비도 다소 떨어지는 3.3은 선택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2.5 뿐입니다. 

 

최근의 현대차 홈페이지 또는 가격표를 살펴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느샌가 현대차도 파워트레인을 옵션의 하나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엔진이 달라도 트림명이 같다면 기본 및 선택 품목은 일부 예외사항을 빼곤 동일합니다. 이번 그랜저의 경우 원격 주차를 가능하게 해주는 50만원짜리 선택 품목인 '파킹 어시스트'가 그에 해당합니다. '나는 항상 반드시 차에서 내려서 좁은 공간에 차를 밀어넣는 주차를 해야한다'는 분이 아니시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을겁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격표에 글자들이 너무 많다보니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영업사원의 추천을 따르거나 '풀옵션'으로 가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지만, 내구재를 구입할 때 실용성 및 경제성을 가장 중시하는 저는 다음과 같이 트림 및 옵션을 정해보았습니다.

 

익스클루시브(3,607만)+파노라마선루프(110만)+빌트인캠(60만)+플래티넘(90만)+현대스마트센스II(60만)+JBL프리미엄사운드시스템(70만)=3,997만

 

각각의 선택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익스클루시브: 자외선 차단 유리, 뒷도어까지 적용되는 이중접합 차음 유리, 뒷좌석 도어 커튼, 뒷면 전동식 커튼

- 파노라마선루프: 개인 취향 (선루프가 없는 차를 타 본 적이 없어서)

- 빌트인캠: 순정사양이라는 최대의 장점 및 보조배터리 포함을 고려하면 매우 저렴함

- 플래티넘: 12.3인치 Full LCD 클러스터, 앰비언트 무드램프, 터치식 공조 컨트롤러가 추가되어, 굳이 캘리그래피를 선택하지 않아도 됨

- 현대스마트센스II: '반자율 주행' 가능

- JBL프리미엄사운드시스템: 운전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오락거리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들 중 3,997만원에 이 정도 디자인과 거주성, 편의성, 안전사양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차량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과연 살 만한지 생각하며 글을 쓰다보니 괜히 더 사고싶어지는 그랜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