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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보니

제주도 한 달 살아보니 #1

오래 전부터 일반 명사처럼 되어버린 '제주도 한달살기'를 2022년 여름에 처음으로 실행에 옮겨본 후, 여기에 대한 생각들과 했던 일들을 다 까먹기 전에 간단하게 정리해두면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몇 편에 걸쳐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2022년, 여러가지 개인적인 여건들이 맞아 떨어지게 되어, '한달살기'를 저희 아이들의 여름 방학 즈음에 맞춰 실행해보기로 연초부터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최초에 계획했던 것은 괌(Guam)에 가서 아이들을 3주간 현지 학교에 다니게 하고 마지막 1주는 휴가를 보내다 오는 것이었고, 실제로 3월 초에 학교에 컨택 후 4월 초에 비용을 지불하고 접수(enrollment)까지 진작에 마쳐두었었습니다.

 

접수 시작하면 잽싸게 등록하려고 메일링 리스트 가입도 해두었던...

 

하지만 상반기 내내 코로나가 끝나가는 분위기에 따라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면서 현지 집과 차량 렌트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며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이 시점에 괌에서 한 달을 지내는게 맞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고민 끝에 결국 5월 중순에 완도-제주도 왕복 배편 예매와 숙소 예약을 마쳤습니다. (아이들 방학하는 시점에서 다시 체크해보니 제주도 가는 비행기 뿐 아니라 차를 싣고 가려는 배편도 없어서 난리더군요..) 제주도 예약을 해놓고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이들 영어 핑계로 괌을 포기하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학교에서 등록금 내라는 메일을 받는 순간 마음 정리가 되더군요. 꼭 돈 때문만이 아니라, 혹시라도 아이들이 처음 겪는 환경에 적응을 못하면 돈+시간 날리고 추가로 한 달 동안 스트레스만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년 상반기 내내 오르기만 한 원-달러 환율 ㅠ_ㅜ

 

한 달 살기는 사실 그저 예쁜 이름일 뿐이고, 휴가를 내야하는 직장인 입장에서는 그냥 한 달 짜리 휴가 입니다. 다행히도 나름 유연한 팀문화가 있는 외국계회사에 다니다보니 휴가를 조율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한 번에 길게 휴가를 낸 것은 저도 처음이다보니, 정확히 3.5주를 놀고 왔는데도 집과 회사를 이렇게 오랫동안 떠나있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 새카맣게 타버린 저와 아이들의 피부를 보면 실감이 나긴 합니다. ㅎㅎㅎ

 

도입부가 좀 길었는데요.. 제주도에서 네 가족이 긴 휴가를 보내며 들었던 몇 가지 생각 중 오늘 글로 옮겨보고 싶은 내용은 '한 달 동안 무엇을 하지?' 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저는 사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살러+쉬러 간다'는 생각으로 휴가를 떠났었는데, 제주도에 도착해서 보니 저희 아내의 생각은 달랐었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냐"는 심리가 짧은 휴가로 제주도를 왔을 때와 유사하게 작동했던 것 같았습니다. 도착 다음날부터 거의 일주일을 마치 짧은 휴가를 왔을 때처럼 바짝 돌아다녔는데, 저는 너무 힘들어서 약간 불만이었거든요. 생애 처음 도전해보는 한 달 살기의 컨셉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명확히 조율하지 않은채 떠났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도 다녔네요....

 

그렇다고 해서 충돌이나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평소처럼 서로 잘 절충을 했죠. 휴식이 필요한 날은 일정에 도서관을 포함시켰고, 에너지가 충분한 날은 최대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제주도가 크더군요.. 휴가기간 동안 다닌 곳들을 쭉 정리해보니, 저희 가족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외출을 했었고, 바다 또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3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했었더라고요. 놀 땐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보니만족스러웠던 일정이었습니다.

 

평소의 3~4일 짜리 평범한 제주도 휴가는 미리 방문할 곳들도 정하고, 동선 짜고, 날씨가 안좋을 때를 대비해서 플랜B도 세우는 등등 사전에 할 일이 많았는데, 긴 휴가는 짐만 잘 싸서 가면 그날 그날 컨디션과 날씨, 그리고 기분에 따라서 유연하게 제주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던 '한 달 동안 무엇을 하지?' 라는 기본 컨셉에 대해 가족들끼리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체크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여유롭고 즐거운 휴가를 좀 더 스무스하게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