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992) GT3, 리어 윙의 비밀

날개를 가만 보면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쭉 뻗은 구조물에 '매달려'있다.

 

8세대 911(992)의 GT3가 지난 2월 16일에 데뷔했습니다. 시끄럽고 불편할 것 같아서 평생 살아도 소유할 일은 없을 예정이긴 한데, 스파이샷 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독특한 형태의 리어 윙을 채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독특한 형태라 함은 다름아닌, 윙(날개)가 차량의 후면에 부착되는 방식 입니다. 위 사진에서 커다란 윙의 상단을 유심히 보시면 보이실겁니다. 보통은 윙을 받치는 구조물이 들어가는데, 그것과는 다른 형태죠. 글을 검색해서 읽으신 분은 리어 윙의 기능 자체는 잘 아실테니 그런 내용은 전부 생략하겠습니다.

 

우아한 백조의 목. 영어로 'Swan neck'

 

리어 윙과 차체를 연결하는 구조물의 생김새가 마치 백조의 쭉 뻗은 목(과 머리)을 연상시켜서 swan neck (스완넥) rear wing 또는 spoiler라고 부르더군요. 물론 이러한 형태는 신형 911 GT3 고유의 것은 아닙니다. 예를들어, DTM 출전 차량들의 경우 이런 스완넥 구조의 리어 윙을 달고있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벤츠도... (C63 DTM)

BMW도.. (M4 DTM)

아우디도!! (RS5 DTM)

위 사진들에서 보시다시피 우리에게 친숙한 독3사 모두 공통적으로 스완넥 리어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날개 면적도 넓은데 그냥 튼튼하게 다리 두 개 달아주면 될 것을 굳이 이런식의 복잡한 형태를 레이싱 차량에 사용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일반적인 양산 스포츠카에 적용되는 리어 '스포일러'는 말 그대로 차량 뒤로 흐르는 공기의 흐름을 일부러 흐트러뜨려서(=spoil) 공기 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경주를 하는 레이싱카에 적용되는 리어 '윙'은 진짜 날개의 역할을 하는데, 비행기를 공중으로 띄워주는 날개의 역할과는 달리 차를 지면에 더 밀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뒤집어진 날개 입니다. 

 

이런건 '스포일러' 입니다

이런게 바로 '윙' 입니다

 

실제로 신형 911 GT3의 경우, 다운포스가 최대로 발휘되는 속도에서는 리어윙에서 발생하는 '무게'가 무려 130kg 이라고 합니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정말로 차가 지면으로 더욱 달라붙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슬슬 답이 나옵니다. 초고성능 스포츠카에 장착된 거대한 윙은 그만큼 무게(다운포스)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받치는 '다리' 또한 상당히 튼튼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레이싱카는? 그리고 신형 911 GT3는 왜 심플하고 튼튼한 다리 대신 목이 꺾어진 스완넥을 채택하였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백수십kg을 위에서 들고 있는 것 보다는 아래에서 받치고 있는게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영문 자료를 많이 검색해보니, 답은 결국 '날개'라는데에 있었습니다. 날개 면 위에 엔진이나 다른 구조물이 붙은 비행기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날개 달린 비행기가 공중에 뜰 수 있는 원리는 바로 날개 위쪽에 형성되는 압력이 아래쪽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날개의 단면은 아래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위가 불룩하고 아래는 평평한데, 쉽게 말해서 앞에서 갈라진 공기가 뒤쪽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불룩한 면의 공기는 평평한 면의 공기보다 빨리 흘러가야하다보니 압력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날개는 떠오릅니다. (=양력) 

 

즉, 공기가 빨리 흘러가야 하는 면은 최대한 공기가 방해받지 않고 원활하게(=빠르게) 잘 흘러가는게 굉장히 중요하겠습니다.

 

비행기 날개는 상단에 형성된 낮은 압력으로 인해 위로 떠오르죠.

 

레이싱카의 윙에 스완넥을 적용한 이유가 이제 완전히 이해가 되시나요? 말하자면 비행기 날개를 뒤집은 형상에 해당하는 레이싱카의 리어윙 하단부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하더라도, 고속 주행시 다운포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습니다.

 

비행기는 날아서 가는 교통수단이니 잘 떠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자동차는 땅에 붙어서 가는 교통수단이므로 땅바닥에 잘 밀착되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플하게는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땅바닥에 잘 붙어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면 연비와 성능이 모두 저하되므로 필요한 만큼만 잘 붙어있도록 하는게 기술력이겠죠. 911 GT3 RS도 아닌 GT3가 뉘르부르크링 7분 벽을 넘어서는데에 여러 개선된 요소들이 조금씩 두루두루 공헌을 했을텐데, 모터스포츠에서 온 스완넥 리어윙 또한 작지만 분명한 기여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