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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찾아보니

(D)SLR, 굿바이!

제목을 먼저 써놓고 수차례 곱씹어보니, 진부한 제목인 것 같기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아빠 (또는 엄마) 사진사라면 집에 렌즈교환식 카메라 한 대 쯤은 가지고 계실겁니다. 이 대목에서 "폰카가 이렇게 좋은데 뭘 굳이 카메라를 따로 써요?!" 라고 하시는 분들은 '렌즈교환식' 카메라의 이점 및 심도(depth)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관심이 없으신 경우가 대부분이실텐데, 이쯤에서 가볍게 뒤로가기를 눌러주셔도 되겠습니다. ^^;

 

팩트는, CIPA(Camera and Imaging Product Association, www.cipa.jp/index_e.html) 데이터에 따르면 '카메라'라는 제품의 출하 대수가 1999년 디지털 카메라를 통계에 잡기 시작한 이후 10년간 약 4배 성장하고 2011년까지 피크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불과 4년만에 성장세를 전부 반납하여 2015년이 되면 1999년 수준으로 돌아가고 또 3년이 지나 2018년이 되면 1999년의 반토막이 납니다. '디지털'의 도입으로 흥했다가, '폰카'의 엄청난 발전 속도로 인해 그야말로 폭망했습니다.

 

저도 정확히 2000년에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접했습니다. 동생과 둘이 미국 친척들을 방문하는 여행을 떠나면서 필름 제한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에 반해서, 외장저장장치까지 챙겨서 '필름의 압박 없이' 신나게 사진을 찍어왔었죠.

 

나의 첫 디카! (2000년 구입, 무려 130만 화소)

 

인생 처음으로 사진을 '많이' 찍다보니 사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며 디지털카메라 바꿈질을 계속했습니다. 인화해서 보던 필름 사진과는 달리 디지털 사진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보게 되고, 또 이미지의 확대가 자유롭기 때문에, 전자제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화질에 대한 갈증을 쉽게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화각과 화질에 대한 목마름에 시달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목마름은 사진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흥미였던 것 같습니다. 사진에 대한 흥미였다면 필름을 사용하는 SLR카메라를 구매하는게 맞는 방향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ㅎㅎㅎㅎ

 

어쨌든, 2004년 부터는 (지금도 굉장히 큰 커뮤니티인) slrclub.com에 가입하며, 열심히 과외와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그 해 말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디지털SLR(DSLR)을 신품으로 첫 구매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DSLR 보급 확대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캐논의 EOS 300D! 현금 1백만원을 주고 마련한 카메라 본체와 18-55mm 번들렌즈가 저의 본격적인 사진 취미 시작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바꿈질도 참 많이 했는데... 추후 다른 포스팅에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할게요.. 

 

가장 오랫동안 썼던 바디 (=가장 만족스럽고 또 신뢰도가 높았던)

 

약 18년간 DSLR을 찍으면서 캐논 뿐 아니라 소니와 펜탁스도 중간에 잠시 들러봤었는데, 역시 처음 써서 손에 익은 것이 가장 편했고, 또 많이 팔린 덕분에 중고 바디와 렌즈 수급도 가장 쉬운 (같은 스펙일 경우 가격도 저렴한) 캐논을 가장 오래 썼습니다. 또, (D)SLR의 장점은 역시, 렌즈 및 액세서리(플래쉬 등)를 야금야금 사모으거나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어느정도 총알이 모이면 바디도 한 번씩 업그레이드를 하는 그런 재미가 있지요.

 

캐논은 87년 부터 EOS라는 이름과 함께, EF라고 불리는 렌즈 마운트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출시한 모든 DSLR에도 필름SLR부터 쓰던 EF 마운트가 모두 호환됩니다. 이미 30년 이상 사용된 시스템인거죠. APS-C 사이즈 센서를 사용하는 바디를 위한 전용의 EF-S를 함께 팔기도 했지만, EF-S를 사용하는 바디에는 EF 렌즈를 그대로 장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고급 렌즈들은 EF-S로는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결국 캐논 입장에서는 EF-S 사용자들이 EF렌즈를 사모으다가 궁극적으로 풀프레임 바디로 넘어가도록 하려는 계산이었을 것입니다. 

 

한 달쯤 전에 웹서핑을 하려고 크롬을 켰다가, 구글에서 저에게 읽어보라고 제안하는 링크들 중 하나가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EF 렌즈 단종의 시작?! 출처 - https://www.canonrumors.com/

 

그 이후로 한 달 동안 그냥 줄줄이 단종 러쉬네요! 하긴, 캐논도 이제 2018년 EOR R 출시와 함께 풀프레임 미러리스의 시대를 (한 발 늦었지만) 본격적으로 열었고, 카메라 시장은 계속해서 쪼그라드는 와중에 기존 고급 유저들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강제로(!)라도 유입시키려면 '이제 구 시스템은 끝났다' 라는 강력한 메세지를 줄 필요가 있겠죠.. 

 

줄줄이 단종.. 출처 - https://www.canonrumors.com/

 

EF렌즈 단종 소식들을 읽자마자 제가 한 첫 번째 일은 정든(?) 캐논을 떠나 미러리스 렌즈교환식 카메라의 최강자 소니로의 이사 였습니다. (물론 전부 중고로....) 저 뿐 아니라 캐논 유저들의 불만은 하루이틀 누적된게 아니죠. 특히 보급기에서의 초점 문제와 오래된(=사골) 센서 이슈는 항상 논란거리 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예 EF렌즈들을 단종시킨다? 이건 DSLR은 완전히 끝났다는 공식적인 선언이네요.

 

카메라 시장에서도 양극화는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필름카메라와 필름은 디지털카메라 보급과 함께 사라져버린지 오래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보급형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폰카 성능의 발전과 함께 20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사실상 사라져버렸으며, 고급 유저들을 흡수했던 DSLR도 미러리스에 완전히 밀리면서 1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바뀌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렌즈 교환식 카메라'라는 장르는 넉넉한 예산을 보유하고 있는 고급 유저들과 함께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할 것은 분명하지만, 2010년 전후로 너도나도 어깨에 DSLR 카메라를 메고 다니던 시대가 끝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카메라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장비들은 더 고급화/고성능화 되었고, 그 핑계로 가격이 함께 급상승해서 말이죠. 

 

똑같은 스펙의 기본 렌즈인데 가격은 2배 ㅎㄷㄷㄷ, 출처 - 네이버 쇼핑 가격비교

 

 

같은 스펙의 고급렌즈의 경우 무려 약 3배의 가격! 출처 - 네이버 쇼핑 가격비교

 

사진은 저에게 오래된 취미라서, 그리고 아이들 성장 모습을 폰카로만 남기고 싶지 않아서, 아마 앞으로 남은 평생도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계속해서 이용할 것 같습니다. 전자제품으로서의 카메라가 빠른 발전속도 덕분에 새로운 모델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면서 기존 제품들의 중고 가격이 착해지는 사이클을 잘만 이용하면, 지금까지처럼 최대한 돈 들이지 않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